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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마을과 남겨진 이름, 그 뒤에 숨은 사연

by timing3227 2025. 9. 10.

세월이 흐르며 수많은 마을이 사라졌지만, 이름만은 여전히 지도나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사라진 마을과 그 뒤에 숨은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역사의 격변과 사람들의 삶의 흔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름으로 이어지는 마을의 기억을 함께 살펴봅니다.

사라진 마을과 남겨진 이름, 그 뒤에 숨은 사연
사라진 마을과 남겨진 이름, 그 뒤에 숨은 사연

 

 

1. 지도에서는 사라졌지만, 입에서는 남아 있는 이름

오늘날 우리가 쓰는 행정 지도를 보면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마을 이름이 많다. 도시 개발, 댐 건설, 도로 확장, 산업단지 조성 등으로 인해 수백 년 이어져 오던 마을이 사라진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주민들의 기억 속과 구전 이야기에서는 여전히 그 이름이 살아 있다.

예를 들어, 경기도 팔당댐 건설 당시 수몰된 수많은 마을들이 있었다. 물속으로 사라졌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나는 ○○골 출신이다”라고 말하며 정체성을 이어갔다. 이런 지명은 이제 지도에 없지만, 사람들의 입과 기억을 통해 살아남은 언어유산이라 할 수 있다.

또 서울 도심에도 이런 예가 있다. 청계천 복개 이전에는 ‘○○다리’, ‘○○시장’ 같은 이름으로 불리던 마을과 공간들이 있었는데, 도시 재개발로 사라졌어도 어르신들은 여전히 옛 지명을 입에 올린다. 이는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삶의 추억과 공동체의 기억이었기 때문이다.

 

 

2. 역사적 사건이 만든 사라진 마을들

많은 마을은 역사적 사건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사라졌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같은 전쟁과 조선 말기·일제강점기의 격변은 수많은 마을을 흔들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경상북도의 망향이라는 지명이다. 본래 마을이 있던 곳이 전쟁으로 불타 사라지면서, 떠난 사람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새로 정착한 곳에 망향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렇듯 지명은 사라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낸 결과물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철도 건설, 군사 시설 확장, 산업 단지 조성 등으로 인해 원주민들이 삶터를 빼앗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 과정에서 사라진 마을 이름이 수십, 수백에 달했다. 그러나 그 이름은 기록과 주민 증언 속에서 여전히 살아 있다.

근현대에 들어서는 한국전쟁으로 인해 많은 마을이 소멸했다. 피난길에 버려진 마을, 군사분계선 인근의 민간인 출입 제한 지역 등은 결국 지도에서 지워졌다. 하지만 지명 연구자들은 그 흔적을 기록하며, 사라진 마을의 이야기를 되살리고 있다.

 

 

3. 개발과 수몰이 남긴 지명의 흔적

현대 사회에서 가장 많은 마을이 사라진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개발과 수몰이다.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도로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기존의 마을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특히 댐 건설은 많은 마을을 수몰시켰다. 충청북도의 충주댐, 경상북도의 안동댐, 경기도의 팔당댐 건설 당시 수많은 마을이 물속에 잠겼다. 하지만 그 이름은 여전히 수몰기념관, 표지석, 또는 주민들의 모임 이름으로 남아 있다.

예를 들어 충주댐 수몰 지역의 마을 주민들은 매년 모여 옛 마을 이름을 부르며 제사를 지낸다. 지도에서는 사라졌지만, 주민들의 기억과 공동체 의식 속에서는 여전히 살아 있는 셈이다.

또 도시 재개발 과정에서도 옛 마을 이름은 종종 건물 이름이나 아파트 단지 이름으로 남는다. ○○마을 재개발 구역이 사라진 자리에 들어선 아파트가 여전히 그 이름을 따서 ‘○○아파트’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 이는 사라진 마을을 기억하는 작은 장치라 할 수 있다.

 

 

4.이름으로 이어지는 기억과 정체성

비록 마을은 사라졌지만, 이름은 사람들의 정체성을 이어준다. 이름 하나만으로도 주민들은 과거의 삶과 추억을 공유하고, 후손들에게 고향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다.

사라진 마을 이름은 학문적으로도 큰 가치가 있다. 지명 연구자들은 기록된 지명과 실제 사용된 이름을 비교하여,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복원한다. 사라진 마을의 이름은 곧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이며, 그들의 문화와 생활 방식을 알려주는 단서다.

무엇보다 이름은 공동체의 상징이다. 마을은 사라져도 주민들이 매년 모여 옛 이름을 부르고, 후손들에게 고향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단순한 추억을 넘어서 정체성을 지키는 행위다. 결국 사라진 마을과 남겨진 이름은, 우리가 기억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잇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많은 마을이 사라졌다. 하지만 이름은 남아, 사람들의 기억과 역사 속에 살아 있다. 사라진 마을 이름은 단순히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 삶의 기록과 정체성의 표식이다.

지도에서 보이지 않는 마을도 이름을 부르는 순간 되살아난다. 사라진 마을과 남겨진 이름, 그 속에는 역사의 비극과 사람들의 애환, 그리고 공동체의 끈끈한 유대가 담겨 있다. 다음에 오래된 지명을 들을 때, 그것이 단순한 낯선 이름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과 추억이 응축된 역사라는 사실을 기억해 보자.